부산 원도심 — 피란수도와 시장

Busan · 정류장 5곳 · ~55 min · 3.0 km

걸어서 정류장에 도착하면 그 자리의 해설이 저절로 재생됩니다. 무료이고 앱 설치도 가입도 필요 없습니다.

이 순서로 걷습니다

1. 용두산공원과 부산타워

용두산은 부산이 시작된 언덕입니다. 한국전쟁(1950~53) 때 서울이 며칠 만에 함락되자 이 도시는 대한민국의 임시수도가 됐습니다. 부산을 둘러싼 방어선이 버텨 준 덕에 오늘의 나라가 존재합니다.

전쟁 중 이 공원은 피란민들의 판잣집으로 뒤덮였고, 두 차례의 큰 불이 그것을 태운 뒤 도시의 기념 정원으로 다시 심어졌습니다. 정상의 부산타워(1973)는 120미터 — 경주 다보탑의 보개(寶蓋)를 본뜬 실루엣입니다.

언덕 아래 항구 쪽으로는 '텍사스 스트리트'가 있었습니다. 선원과 밀수품이 오가던 전후 항만 거리 — 이 도시를 다시 세운 날것의 상업이었죠.

2. 국제시장

1950년 40만 피란민이 부산으로 쏟아지자, 사람들은 들고 온 것을, 그다음엔 미군 보급선에서 흘러나온 것을 팔았습니다. 그 즉흥의 경제가 국제시장이 됐습니다. 이름의 '국제'는 시장을 흘러 다니던 외국 물자에서 왔습니다.

천사백만 명 — 국민 넷 중 하나가 본 영화 '국제시장'(2014)의 무대가 이곳이고, 영화 속 실제 가게 '꽃분이네'는 지금도 영업 중입니다. 한국의 어른들에게 이 시장은 향수가 아니라 가족의 기원 설화입니다.

오늘날 1,500여 점포는 맞춤 양복부터 군용 손전등까지 팔고 있는데, 골목마다 한 업종씩 모이는 구획은 전쟁 때의 논리 그대로입니다.

3. BIFF광장

1996년, 영화 산업 기반이 전무하던 항구 도시가 옛 단관 극장들이 모인 이 거리에서 부산국제영화제를 열었습니다. 그것이 아시아에서 가장 중요한 영화제가 됐고, '기생충'보다 여러 해 앞서 한국 영화를 세계 무대에 올렸습니다. 발밑 보도엔 임권택, 빔 벤더스, 장이머우 같은 감독들의 핸드프린팅이 박혀 있습니다.

영화제는 이후 화려한 센텀시티로 옮겨 갔지만, 태어난 자리에 BIFF광장이라는 이름을 남겨 두었습니다. 영화 산업이 자신의 항구 출신을 인정하는 방식이죠.

4. 자갈치시장

자갈치는 한국 최대의 수산시장입니다. 이름은 원래 해변의 자갈에서 왔습니다. 이 시장의 정체성은 '자갈치 아지매'들의 것입니다 — 전쟁으로 남편을 잃거나 바다에 보낸 여인들이 좌판을 맡았고, 그 딸과 손녀들이 지금도 시장을 지킵니다.

갈매기 날개를 본뜬 본관 건물(2006)보다 진짜 시장은 바깥 부둣가에 펼쳐집니다. 문어와 멍게가 든 수조, 연탄불 위의 꼼장어, 새벽의 경매 소리.

아래층에서 고른 생선을 위층에서 몇 분 만에 상에 받는 것 — 한국 요리에서 가장 짧은 유통 과정입니다.

5. 영도대교

1934년에 놓인 영도대교는 한국 최초의 도개교입니다 — 배가 지나가도록 상판이 들리는 다리죠. 전쟁은 이 다리에 다른 역할을 줬습니다. 만남의 장소. 흩어지는 가족들은 서로에게 말했습니다. '헤어지면 영도다리에서 만나자.' 매일 수천 명이 난간에 붙은 쪽지들을 읽으며 여기서 기다렸습니다.

다리 입구엔 점집 천막이 줄지어 섰습니다 — 잃어버린 아들이 살아 있는지 묻는 피란민들이었죠. 이 시절 가장 유명한 노래 '굳세어라 금순아'도 이 도시의 인파 속에서 여동생을 잃은 오빠가 부르는 노래입니다.

1966년 멈췄던 도개 장치는 2013년 복원됐습니다. 매일 오후 2시, 사이렌과 함께 590톤 상판이 75도로 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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