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메지성 외곽 산책 — 해자·성문·정원 입구
정문 오테몬에서 해자를 따라 정원 고코엔, 센히메의 물가 길, 백로의 샘과 옛 뒷문 터를 지나, 단게 겐조의 박물관과 육군의 벽돌 창고, 천수 아래 산노마루 광장과 성 입구까지. 장소 9곳, 약 75분, 모두 유료 구역 밖입니다.
히메지 · 장소 9곳 · ~75분 · 3.2 km
인솔자가 함께 걷는 가이드 투어가 아니라, 혼자 걸으며 듣는 셀프 가이드 워킹 투어입니다. 예약도 정해진 출발 시각도 없습니다. 지도에서 장소 위치를 보고 번호 순서대로 걸으면, 각 장소에 도착할 때 그 자리의 오디오 가이드가 저절로 재생됩니다. 무료이고 앱 설치도 가입도 필요 없습니다.
걷는 시간이 약 75분이라 자유여행 반나절 동선으로 넣기 좋습니다. 같은 도시의 다른 코스와 이어 붙이면 당일치기 여행 코스가 되고, 이틀이면 1박 2일 여행 일정이 됩니다.
이 순서로 걷습니다
1. 오테몬과 사쿠라몬바시
해자 건너편, 기와지붕을 얹은 문을 보세요. 그 앞의 나무다리가 사쿠라몬바시이고, 문이 히메지성의 정문 오테몬입니다. 이 코스는 성 바깥을 도는 무료 산책이고, 천수 안으로는 들어가지 않습니다.
둘 다 무사들이 보던 모습 그대로는 아닙니다. 히메지시 공식 해설에 따르면 오테몬은 원래 훨씬 견고했습니다. 성문 두 개 사이에 작은 마당이 있었고, 위에는 망루가 올라 있었지요. 메이지 시대에 성은 일본 육군의 기지가 됐습니다. 군은 차량이 드나들 넓은 통로가 필요했고, 그래서 옛 성문을 헐었습니다. 지금 보시는 문은 1937년에 세운 것입니다. 다리는 2007년, 에도 시대 도면을 따라 다시 놓았습니다.
등 뒤의 땅도 달라졌습니다. 정문 가까운 이 남쪽에는 번의 고위 무사들이 큰 저택을 짓고 살았습니다. 메이지 시대에 이 동네는 헐려 육군 연병장이 됐습니다.
그래도 언덕 위의 성은 남았습니다. 지금의 성은 1601년,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사위 이케다 데루마사가 짓기 시작했습니다. 대천수와 작은 천수 세 채는 1609년에 완성됐습니다. 이 성은 포위된 적이 없습니다. 1945년 공습으로 히메지 시가지 상당 부분이 파괴됐지만, 성은 큰 피해 없이 살아남았습니다. 지금 일본의 어느 성보다 원래 건물이 많이 남아 있는 성입니다. 1993년 12월에는 나라의 호류지와 함께 일본 최초의 세계유산이 됐습니다.
해자를 따라 양옆을 둘러보세요. 시의 해설은 성의 해자와 토루, 돌담 대부분이 원래 모습 그대로라고 말합니다.
2. 고코엔 정원 입구
눈앞의 정원 문을 보세요. 이곳이 고코엔 입구입니다. 히메지시 승격 100주년을 기념해 1992년 4월에 문을 연 일본 정원입니다. 넓이는 약 3.5헥타르로, 성의 바로 남서쪽에 있습니다.
오래돼 보이는데, 어떤 의미에서는 정말 오래됐습니다. 시는 정원을 짓기 전에 이곳을 일곱 차례 발굴했습니다. 그 결과 1618년 영주 혼다 다다마사가 지은 서쪽 저택 터가 나왔습니다. 무사 집터와 옛 골목도 함께 나왔지요. 이 배치는 사카이 가문 시절의 무사 저택 지도와 거의 맞았습니다. 설계자들은 그 선을 살렸습니다. 안의 정원 아홉 개가 발굴로 드러난 집터와 골목을 따라 나뉘어 있습니다.
이름은 학교에서 왔습니다. 메이지 유신 때까지 히메지를 다스린 사카이 가는 1692년, 전에 다스리던 마에바시에서 번의 학교 고코도를 열었습니다. 1749년 히메지로 옮겨 올 때 학교도 함께 왔습니다. 1842년에는 정문 서쪽, 지금의 정원 입구 근처로 옮겨 넓혔습니다. 학문과 무예를 함께 가르쳤고, 무예 수련장도 따로 있었습니다.
안에 들어가시면 가장 큰 정원은 영주 저택의 연못 정원입니다. 다도 정원에는 우라센케 15대 이에모토 센 소시쓰가 설계를 감수한 다실이 있습니다. 정원 측은 이곳의 가장 큰 특징을 차경이라고 말합니다. 정원 담장 위로 성과 서쪽 성곽의 오랜 숲이 솟아 보입니다.
3. 이치노하시몬 터와 센히메노코미치
주변의 돌 표지와 옛 석축을 찾아보세요. 이 자리에 이치노하시몬이라는 성문이 있었습니다. 성 아랫마을의 서쪽을 지키던 센바강, 그 강을 건너는 다리를 지킨 문입니다. 이치는 마을이나 시장, 하시는 다리라는 뜻입니다. 이름 그대로 마을로 건너가는 다리의 문이지요.
히메지시 공식 해설에 따르면 이 문은 사실 두 개였습니다. 육중한 두 짝 문이 둘 있고, 그 사이에 작은 마당이 있었습니다. 안쪽 문은 바깥 문과 어긋나게 꺾여 있었습니다. 적은 곧장 돌진할 수 없었고, 멈춰서 방향을 틀어야 했습니다. 강 건너에는 목수와 나무 장인들의 동네가 있었습니다. 지금도 자이모쿠마치, 목재 동네라고 부릅니다. 영주의 매를 기르던 매사냥꾼들도 근처에 살며 이 문으로 성에 드나들었습니다.
여기서 북쪽으로 이어지는 물가 길이 센히메노코미치, 센히메의 오솔길입니다. 시는 이 길을 센바강과 성의 해자 사이로 난 산책로라고 소개합니다. 길에는 단풍나무와 벚나무를 심었습니다.
센히메는 쇼군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손녀입니다. 여섯 살에 히데요시의 아들 도요토미 히데요리와 혼인했습니다. 1615년 할아버지의 군대가 오사카성을 무너뜨렸고, 히데요리는 그곳에서 죽었습니다. 이듬해 센히메는 혼다 다다토키와 다시 혼인했습니다. 1617년 시아버지가 히메지 영주가 되면서 부부는 이곳으로 왔습니다. 금슬이 좋았다고 전하고, 딸과 아들을 하나씩 두었습니다. 그러나 아들은 두 살에 죽었고, 1626년에는 다다토키도 세상을 떠났습니다. 센히메는 히메지를 떠나 비구니가 됐고, 예순아홉까지 살았습니다.
4. 시미즈몬 터와 사기노시미즈
물 위에 지붕을 씌운 작은 구조물과 옆의 돌담을 찾아보세요. 사기노시미즈, 백로의 샘이라는 샘을 덮은 지붕입니다. 이 샘의 이름을 딴 성문이 여기 있었습니다. 맑은 샘물의 문, 시미즈몬입니다.
핵심은 물이었습니다. 히메지시 공식 해설에 따르면 이 샘은 바로 옆의 저수지와 우물에 물을 댑니다. 저수지는 수문으로 해자와 이어져 있어서, 성은 해자의 수위를 올리고 내릴 수 있었습니다.
성문은 사람의 걸음을 늦추도록 지었습니다. 서쪽을 향한 바깥 문을 지나면 담으로 둘러싼 작은 마당이 나왔습니다. 더 큰 안쪽 문은 남쪽을 향해, 바깥 문과 직각으로 서 있었습니다. 그 위에는 망루가, 문 너머에는 경비소가 있었지요. 적은 곧장 밀고 들어올 수 없었습니다. 속도를 줄이고 방향을 바꿔야 했고, 그만큼 지키는 쪽은 시간을 벌었습니다.
이 북쪽은 성의 설계가 시작되는 곳이기도 합니다. 시는 이 성의 해자를 나선형이라고 설명합니다. 북쪽에서 시작해 시계 반대 방향으로 언덕을 감으며, 세 겹의 방어선을 이룹니다. 시에 따르면 이런 설계는 도쿄의 에도성 말고는 예가 없습니다. 가장 안쪽에는 성 자체가 있었습니다. 가운데 고리에는 무사들의 동네가 있었고, 상인과 장인은 그 바깥에 살았습니다.
샘 이름의 백로는 성의 별명이기도 합니다. 히메지성은 높이 솟은 천수와 눈부신 흰 회벽 때문에 백로성이라 불립니다.
5. 시로토피아 기념공원과 현립역사박물관
잔디밭 너머의 큰 박물관 건물을 보세요. 이곳은 효고현립역사박물관으로, 1983년 4월에 문을 열었습니다.
기본 설계는 건축가 단게 겐조가 했습니다. 박물관의 설명으로는 건물 자체가 성을 주제로 삼았습니다. 벽은 성의 돌담을 나타냅니다. 환기구는 성벽의 작은 사격 구멍, 하자마를 나타냅니다. 찻집의 유리면에 천수가 비친다는 점도 박물관이 꼽는 볼거리입니다.
진짜 하자마도 알아 두면 좋습니다. 히메지시 공식 해설은 성벽에 난 하자마를 997개로 셉니다. 길쭉한 직사각형 틈은 활을 쏘는 구멍이었습니다. 네모, 동그라미, 세모는 총을 쏘는 구멍이었지요. 서서, 무릎 꿇고, 엎드려 쏠 수 있게 세 높이로 뚫었습니다. 그런데 400년 동안 성은 이 구멍을 쓸 일이 없었습니다.
주변 잔디밭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1989년 히메지는 시 승격 100주년을 맞아 시로토피아 박람회를 열었는데, 바로 이 땅이 그 행사장이었습니다. 행사가 끝난 뒤 이 터를 공원으로 꾸민 것이 시로토피아 기념공원입니다. 계절마다 꽃이 핍니다.
박물관도 성처럼 특별사적 안에 서 있습니다. 박물관은 히메지성을 중심으로 효고현 곳곳의 성에 관한 자료를 모은다고 밝힙니다.
6. 붉은 벽돌의 히메지시립미술관
길게 누운 붉은 벽돌 건물 쪽을 보세요. 2층에 박공지붕을 얹었습니다. 지금은 히메지시립미술관이지만, 원래는 육군 창고로 지은 건물입니다.
미술관이 밝힌 역사에 따르면 서쪽 동은 1905년, 육군성 기술자들의 설계로 세워졌습니다. 히메지 육군 병기창의 창고였고, 이 부대는 뒤에 제10사단 병기부가 됐습니다. 1913년에는 군복을 넣는 창고 동이 덧붙었습니다. 두 동은 직각으로 꺾여 이어져 있습니다.
왜 성 옆에 군 창고가 있을까요? 번이 폐지된 뒤 성 안은 군 기지가 됐습니다. 히메지시 공식 해설에 따르면 1873년부터 성에 육군 연대가 들어섰고, 1898년에는 부대가 더 늘었습니다. 성 안에 병영과 여러 시설이 지어졌습니다. 미술관은 히메지를 메이지 시대부터의 군사 도시라고 부릅니다.
미술관은 육군이 전국의 사단마다 이와 비슷한 창고를 지었다고도 설명합니다. 표준 설계도가 있었던 듯합니다. 비슷한 벽돌 건물이 가나자와와 젠쓰지, 히로시마에도 남아 있습니다.
전쟁이 끝난 뒤 이 건물은 히메지 시청이 됐습니다. 1980년 시청이 옮겨 가자 미술관으로 바뀌었고, 1983년에 미술관으로 문을 열었습니다. 2003년에는 국가 등록유형문화재가 됐습니다.
7. 기사이몬 터
이곳의 옛 석축과 해자 가장자리를 보세요. 여기가 히메지성의 뒷문, 기사이몬이 있던 자리입니다. 정문은 남쪽을 향했고, 동쪽의 이 문은 뒷문이었습니다.
히메지시 공식 해설에 따르면 이곳은 성의 나선형 해자가 첫 바퀴를 마치는 지점입니다. 천수와 중심 성곽을 감싼 가장 안쪽 물길이 여기서 닫힙니다. 시의 설명으로는 이 문에서 오르는 길이 성이 선 언덕의 가파른 비탈을 이용했습니다. 길을 지그재그로 꺾고 중간중간 문을 두어 지키기 쉽게 만들었습니다.
뒷문은 날마다 쓰는 문이기도 했습니다. 근처에 쌀 창고가 두 채 있었습니다. 하나에는 번이 해마다 걷은 연공미를, 다른 하나에는 가신들에게 줄 녹봉 쌀을 두었습니다. 그래서 무사들은 이 문으로 들어와 녹봉을 받았습니다. 녹봉은 쌀이나 어음, 또는 둘을 섞어 주었습니다.
마을 사람들도 이 문을 썼습니다. 성의 수호신을 모신 오사카베 신사에 참배하러 갈 때였지요. 이 신사에는 따로 얽힌 이야기가 있습니다. 히메지시 공식 해설에 따르면 성은 원래 신사가 있던 자리를, 신사를 옮기고 지은 것입니다. 한 영주는 신사를 옮긴 탓에 집안에 저주가 내렸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1600년대 초 성 안에 신사를 다시 세우게 했습니다. 제2차 세계대전 뒤에는 신사가 다시 옮겨져, 지금은 천수 꼭대기 층에 있습니다.
나무 사이로 보인다면 여기서 천수를 올려다보세요. 성의 뒤편, 성 사람들이 드나들던 길입니다.
8. 산노마루 광장과 천수
잔디밭 건너 언덕 위의 흰 천수를 정면으로 보세요. 이 탁 트인 광장이 산노마루, 세 번째 성곽입니다. 처음부터 비어 있던 곳은 아닙니다.
히메지시 공식 해설에 따르면 1617년부터 히메지를 다스린 혼다 가문이 이곳을 번의 관청과 화려한 저택으로 채웠습니다. 다실과 정원, 연못도 있었습니다. 건물들 사이로는 폭 21m의 큰길이 천수를 향해 뻗어 있었습니다. 혼다 가문에 시집온 쇼군의 손녀 센히메도 정문 가까운 이곳에 자기 저택을 두었습니다. 메이지 시대에 육군은 병영을 짓느라 이 모두를 헐었습니다. 해설에 따르면 지금은 회색 판석 두 줄이 옛 큰길의 가장자리와 사라진 건물의 터를 표시합니다.
이제 천수를 보세요. 밖에서는 지붕이 다섯 겹이지만, 안은 지하 1층에 지상 6층입니다. 시는 천수 꼭대기를 해발 92m로 밝힙니다. 언덕과 돌로 쌓은 기단, 건물을 모두 더한 높이로, 건물만은 31.5m입니다. 작은 천수 세 채가 지붕 덮인 복도로 이어져 있습니다. 시는 이 연결된 천수 무리를 히메지성이 일본 제일의 명성으로 불리는 이유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흰색의 정체는 회반죽입니다. 벽은 불에 강한 석회 회반죽으로 칠했습니다. 지붕까지 하얗게 보이는 것은 기와 이음매를 흰 회반죽으로 메웠기 때문입니다.
9. 성 입구와 안쪽 해자의 돌담
물 건너 해자에서 솟은 돌담을 보세요. 성 정문 입구 바로 옆의 안쪽 해자입니다. 히메지시 공식 해설은 이 구간을 1600년대 초 성을 다시 지은 이케다 데루마사가 쌓은 것으로 봅니다.
쌓은 방식을 보세요. 이 돌담은 돌을 대강 다듬어 맞물리게 쌓고, 틈을 작은 돌로 메운 방식입니다. 모서리에는 길게 다듬은 돌을 벽돌처럼 엇갈려 쌓아 가장자리를 붙잡았습니다.
2016년과 2017년에 이 구간을 수리했습니다. 나무뿌리가 돌을 밀어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작업자들은 돌을 빼내고 뿌리를 파낸 뒤 돌을 제자리에 다시 넣었습니다. 이 작업으로 겉면 뒤에 무엇이 있는지 드러났습니다. 주먹만 한 돌을 50cm에서 1m 두께로 채운 층이 있었습니다. 빗물이 벽 뒤에 고이지 않고 빠지게 하는 층입니다.
어떤 돌에는 큰 바위를 쪼갤 때 박은 쐐기 자국이 남아 있습니다. 작업자들은 같은 바위에서 나온 조각을 서로 맞춰 볼 수도 있었습니다. 한 돌에는 동그라미에 선 하나를 그은 표식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성 전체에서 이런 표식이 50종쯤, 모두 90개 가까이 나왔습니다. 무슨 뜻인지는 아무도 확실히 모릅니다. 돌을 캔 곳이나 쌓은 조, 놓을 자리를 표시했을 수 있다고 합니다.
개찰구 너머에는 성에서 가장 큰 문인 히시노몬이 있습니다. 입구 위에 새긴 마름 문양에서 이름을 땄습니다. 천수는 언덕 더 위에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