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이안 올드타운 — 상인들의 집·회관·내원교
호이안을 국제 항구로 만든 강에서, 시장과 상인들이 맹세했다고 전하는 사당, 중국인 회관과 안으로 깊은 옛 상가 주택이 늘어선 거리를 지나 2024년에 복원을 마친 지붕 덮인 다리까지. 장소 8곳, 거리에서 걷고 듣는 기준 약 45분. 회관과 옛 집 안 관람은 시간이 따로 들고 구시가 입장권이 필요합니다.
호이안 · 장소 8곳 · ~45분 · 1.0 km
인솔자가 함께 걷는 가이드 투어가 아니라, 혼자 걸으며 듣는 셀프 가이드 워킹 투어입니다. 예약도 정해진 출발 시각도 없습니다. 지도에서 장소 위치를 보고 번호 순서대로 걸으면, 각 장소에 도착할 때 그 자리의 오디오 가이드가 저절로 재생됩니다. 무료이고 앱 설치도 가입도 필요 없습니다.
걷는 시간이 약 45분이라 자유여행 반나절 동선으로 넣기 좋습니다. 같은 도시의 다른 코스와 이어 붙이면 당일치기 여행 코스가 되고, 이틀이면 1박 2일 여행 일정이 됩니다.
이 순서로 걷습니다
1. 시장 앞 투본강 강변
강가에 서서 강물을 바라보세요. 이 강이 투본강입니다. 바다에 거의 다 온 자리이지요. 왼쪽 하류로 내려가면 끄어다이에서 바다와 만납니다. 바로 뒤에는 시장이 있습니다. 몇백 년 동안 이 물가가 이 도시가 있는 이유였습니다.
고고학 조사에 따르면 이 강을 따라 교역한 흔적은 기원전 2세기까지 올라갑니다. 15세기에는 이곳이 참파 왕국에서 가장 중요한 항구였습니다. 베트남이 이 지역을 차지한 뒤에도 그 역할은 이어졌고, 동남아시아의 큰 무역항으로 자랐습니다. 가장 붐빈 때는 16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였습니다.
호이안 유산 보존센터는 그때 모습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해마다 중국, 일본, 동남아시아, 유럽에서 배가 들어와 넉 달에서 여섯 달 동안 장이 섰습니다. 이 지역을 다스리던 응우옌 군주들은 외국 상인, 특히 중국인과 일본인이 머물러 가게를 열고 자기 풍속대로 살게 해 주었습니다. 17세기에는 일본인 거리와 중국인 거리, 네덜란드 상관이 있었습니다. 외국 기록에는 파이포라는 이름 등으로 남아 있습니다.
그러다 강이 등을 돌렸습니다. 19세기 말이 되자 항구에 흙이 쌓였고, 북서쪽으로 30km쯤 떨어진 다낭이 증기선 시대의 항구로 떠올랐습니다. 무역은 빠져나갔습니다.
구시가가 지금 모습으로 남은 것은 바로 그 쇠퇴 덕분입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는 경제가 멈춰 있던 탓에 낡은 목조 건물을 콘크리트로 바꿀 압력이 없었다고 적었습니다. 길의 짜임이 그대로 남았고, 나무로 지은 도시도 상당 부분 남았습니다. 1999년 세계유산이 되었습니다.
2. 호이안 시장
눈앞의 시장 건물과 그 둘레의 좌판을 보세요. 호이안 시장입니다. 여행자에게는 구경거리지만, 둘레 마을 사람들에게는 지금도 장을 보는 곳입니다.
시장이 처음부터 여기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보존센터의 조사에 따르면 이 자리에 시장이 선 것은 1848년쯤입니다. 이 모퉁이에서 서쪽으로 뻗은 응우옌타이혹 거리가 1840년대에 생긴 뒤의 일입니다. 그 전에는 몇 블록 서쪽, 강가에 시장이 있었습니다.
새 자리는 시장을 여는 옛 원칙을 따랐습니다. 센터는 그 원칙을 마을 가까이, 강 가까이, 길 가까이로 정리합니다. 이 모퉁이는 셋을 다 갖췄습니다. 길 건너 북쪽에는 관공 사당도 마주하고 있었지요.
사람들은 물길로도 오고 뭍길로도 왔습니다. 센터는 투본강 위아래의 여러 마을이 배로 물건을 싣고 왔고, 다른 마을들은 길로 왔다고 적고 있습니다. 항구가 시든 뒤에도 이 시장은 둘레 지역 전체의 장터 노릇을 했습니다.
센터는 건물 모습도 설명합니다. 20세기 초에 벽돌로 다시 지었고, 아치형 문과 물고기 비늘 모양 기와지붕을 얹었다고 합니다. 정문 앞에는 지붕을 씌운 우물이 있었는데, 전해지기로는 시장보다 오래됐고 시장과 둘레 거리에 물을 대 주었다고 합니다.
센터가 특히 꼽는 이곳 특산물은 맘, 생선을 소금에 절여 항아리에 담근 젓갈입니다. 가장 이름난 것은 멸치로 담근 맘입니다. 생선을 씻어 생선 셋에 소금 하나쯤의 비율로 절인 뒤, 항아리에 꼭꼭 눌러 담아 몇 주 동안 둡니다. 밥에 얹어 먹거나 찍어 먹는 소스로 씁니다.
3. 관공묘(쭈어옹)
시장을 마주 보고 선 사당 정면을 보세요. 관공을 모신 사당으로, 이곳 사람들은 쭈어옹이라고 부릅니다. 관공은 중국 삼국시대의 장수 관우입니다. 세월이 흐르며 충성과 신의의 신이 되었습니다.
보존센터에 따르면 이 사당은 1653년 이전에 밍흐엉 공동체와 베트남 주민들이 함께 세웠습니다. 지금 모습은 19세기 보수 때 갖춰졌습니다. 안에는 관우와 함께 아들 관평, 부하 장수 주창을 모십니다. 관우가 타던 두 말, 백마와 적토마에게도 따로 제단이 있습니다.
왜 중국 장수가, 그것도 시장 맞은편에 있을까요. 보존센터의 전 부소장은 이 지방에 전해지는 이야기로 상인다운 답을 내놓습니다. 호이안은 날마다 거래가 오가던 항구 도시였습니다. 돈을 빌리고 외상을 줄 때는 약속을 맹세할 자리가 필요했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배 한 척 분량의 물건을 통째로 외상으로 사고팔기도 했고, 관공이 그 약속의 증인이었다고 합니다. 사람들은 약속을 깬 사람을 관공이 벌한다고 믿었습니다.
관공을 모신 이유는 사람마다 달랐습니다. 상인은 재물을 빌었고, 선비는 유교 경전을 읽던 인물로 받들었고, 군인은 수호신으로 여겼습니다. 1982년 조사에서는 호이안의 집 안에 모신 관공 제단이 192개나 됐습니다.
이 사당의 가장 큰 날은 음력 6월 24일입니다. 통돼지구이를 올리는 제례가 열리고, 둘레 거리에서는 사자춤과 용춤이 펼쳐집니다.
4. 푸젠 회관(푹끼엔 회관)
길가의 높고 화려한 문을 보세요. 이 문 뒤에 푸젠 사람들의 회관이 있습니다. 베트남어로는 푹끼엔 회관입니다. 보존센터는 이 회관을 1697년에 지었다고 봅니다. 중국 남동쪽 해안의 푸젠성에서 온 상인들이 모이던 곳이자 그들의 사당이었습니다.
회관은 두 가지 일을 함께 했습니다. 같은 고향 사람들이 모여 장사 이야기를 하고 서로 돕는 모임 장소였습니다. 그리고 사당이었습니다. 이곳은 뱃사람을 지켜 주는 바다의 여신, 천후 성모를 모십니다. 강과 물, 재물, 자식을 지켜 주는 신들도 함께 모십니다. 넓은 바다를 건너는 배에 살림이 걸린 사람들에게, 바다 여신을 모신 것은 아주 현실적인 선택이었지요.
눈앞의 문은 회관보다 훨씬 젊습니다. 보존센터의 영어 안내는 이 정문을 1975년에 세웠다고 적고 있습니다. 문 안쪽으로는 회관이 길에서 뒤로 여러 겹 이어집니다. 센터의 설명으로는 앞마당, 본당, 뒤채, 그리고 동쪽과 서쪽 건물이 있습니다. 회관 안에는 옛날 붐비던 대외 무역의 흔적이 지금도 남아 있다고 합니다.
안에 들어가시면 본 제단을 보세요. 여신 곁에 두 시종이 서 있습니다. 센터는 이들을 천 리 밖 배 소리를 듣는 순풍이, 천 리 밖 배를 보는 천리안이라고 소개합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는 이 거리의 큰 사당들이 회의장으로도 쓰여, 종교와 생활을 한데 묶었다고 적었습니다. 이 문 뒤의 회관이 바로 그런 곳입니다.
5. 무역도자기 박물관(쩐푸 80번지)
80번지 집을 보세요. 나무 발코니가 달린 2층집입니다. 보존센터는 이 집을 19세기 무렵에 지은 것으로 보고, 호이안 집의 전형적인 짜임을 보여 주는 예로 듭니다. 1995년부터는 무역도자기 박물관으로 쓰고 있습니다.
먼저 집부터 보겠습니다. 호이안의 거리 집은 앞이 좁고 안으로 깊게 이어집니다. 센터는 이것을 대롱 모양의 짜임이라고 부릅니다. 길에 면한 앞채는 가게, 곧 장사하는 곳이었습니다. 그 뒤로 빛과 바람이 드는 안마당이 있고, 지붕 덮인 연결채를 지나 뒤채가 나옵니다. 뒤채는 물건을 쌓아 두고 식구가 사는 곳이었습니다. 맨 뒤에는 부엌이 있는 뒷마당이 있었고, 흔히 뒷길이나 강가로 나가는 문이 달려 있었습니다.
2층도 눈여겨보세요. 센터에 따르면 19세기 중반까지는 이런 집을 단층으로 짓고, 기껏해야 낮은 다락을 두었습니다. 온전한 2층집이 흔해진 것은 19세기 후반에서 20세기 초부터입니다.
이 거리의 문 위를 올려다보면, 동그랗게 깎은 장식 두 개가 붙은 문이 보이기도 합니다. 문의 눈, 곧 문눈이라고 부릅니다. 센터의 설명으로는 원래 문틀을 잡아 주는 나무 빗장의 머리였는데, 차츰 장식이 되었고 나중에는 신성한 물건이 되었습니다. 설과 명절이 오면 집집마다 문눈을 떼어 깨끗이 닦고, 새 붉은 천 조각을 끼워 다시 답니다. 센터는 호이안의 문눈 모양이 스무 가지가 넘는다고 셉니다.
집 앞면은 나무 판자로 된 곳이 많습니다. 끼워 두면 벽이 되고, 떼어 내면 물건을 늘어놓는 판매대가 되었습니다.
시내 발굴에서는 베트남, 중국, 일본 도자기가 함께 나왔습니다. 박물관은 일본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세웠습니다. 박물관에 들어가 보시면, 소장품이 호이안을 거쳐 오간 도자기 무역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됩니다.
6. 떤끼 고가
길에서 강 쪽에 있는 101번지 집을 보세요. 가게 이름은 떤끼이고, 한 집안이 대를 이어 살아온 집입니다. 보존센터는 이 집을 19세기에 지은 것으로 보고, 호이안의 아름다운 옛집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1990년에 국가 유적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거리에도 사연이 있습니다. 보존센터에 따르면 이 거리는 1840년 이후에야 생겼습니다. 프랑스 통치 때는 광둥 사람들의 이름을 딴 거리였고, 이 집은 18번지였습니다.
이 집은 블록을 꿰뚫고 이어집니다. 1992년에 만든 유적 기록은 이 집을 대롱 모양 집이라고 적습니다. 여러 채가 앞뒤로 이어져, 이 거리에서 강가의 바익당 거리까지 닿습니다. 예전에는 가게이자 창고이자 세를 주는 집이자 살림집이었습니다. 지금은 살림집이면서 집안의 사당이기도 합니다.
안에 들어가시면 문 바로 안쪽에서 위를 올려다보세요. 기록에 따르면 다락 바닥에 한 변이 1m쯤 되는 네모난 구멍이 있는데, 물건을 오르내리던 구멍입니다. 더 안쪽, 다섯째와 여섯째 기둥 줄 사이에는 기록이 게 껍데기라고 부르는 둥근 지붕틀이 있습니다. 그 받침에는 비단 띠를 두른 칼 두 자루가 엇갈리게 새겨져 있습니다. 처마 받침은 물고기 모양으로 깎았고, 문에는 음양 무늬의 문눈 두 개가 달려 있습니다.
기록에는 증조부 때부터 내려온 떤끼라는 간판들도 적혀 있습니다. 1992년 기록 당시 집주인은 자신이 이 집의 5대째라고 말했습니다. 크게 고쳐 지은 적은 없고, 작은 수리만 했다고 했습니다.
7. 광둥 회관(꽝찌에우 회관)
눈앞의 회관 문을 보세요. 광둥 사람들의 회관으로, 베트남어로는 꽝찌에우 또는 꽝동 회관이라고 부릅니다. 보존센터에 따르면 광둥성 출신 화교들이 1885년에 지었습니다. 호이안에 사는 고향 사람들이 모이고 제사를 지내는 곳이었습니다.
1885년이면 꽤 늦은 때입니다. 유네스코 자문기구는 항구가 가장 붐빈 때를 16세기 말부터 18세기 초까지로 봅니다. 하지만 호이안은 19세기 내내 베트남 중부의 중심 항구로 남았습니다. 같은 보고서는 이 도시의 사당과 회관 대부분이 지금 모습으로는 19세기 것이라고 적고 있습니다.
이 회관은 처음에 바다의 여신 천후와 공자를 모셨습니다. 센터에 따르면 나중에는 관공과 공동체를 세운 선조들을 모시게 되었습니다. 센터는 이 회관이 광둥식 건축과 이 지방의 전통을 잘 섞었다고 평가합니다. 나무와 돌을 힘 받는 구조와 장식에 알맞게 나눠 쓴 점을 듭니다.
안에 들어가시면 안마당의 용 분수를 찾아보세요. 센터의 영어 안내는 도자기로 만들었다고 소개합니다. 회관 곳곳의 조각상은 광둥 음악극의 장면을 담고 있다고 합니다.
8. 내원교(쭈어꺼우·일본교)
개울 위에 걸린 지붕 다리를 보세요. 돌로 쌓은 다리발 위에 기와지붕을 얹었습니다. 쭈어꺼우, 곧 절 다리라는 이름의 이 다리는 일본교라고도 부릅니다. 보존센터는 이 다리를 호이안에 남은 단 하나의 옛 다리라고 설명하고, 지금은 이 도시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전해지기로는 일본인이 지은 다리입니다. 1817년에 세운 비석이 지금도 다리에 남아 있는데, 그 비석이 바로 이 전승을 적고 있습니다. 보존센터는 이를 근거로 다리를 처음 지은 때를 17세기 초로 봅니다. 지금 모습은 18세기와 19세기에 이곳의 중국계와 베트남 주민들이 고쳐 가며 갖춘 것입니다.
1719년, 이 지역을 다스리던 군주 응우옌푹쭈가 이 도시에 왔습니다. 보존센터가 펴낸 연구에 따르면 그는 사방에서 온 상인들로 붐비는 다리를 보고 정식 이름을 내렸습니다. 라이비엔끼에우, 한자로 내원교입니다. 다리는 구시가의 큰길을, 옛날 물살이 세차게 강으로 흘러들던 개울 위로 이어 줍니다.
다리 북쪽에는 작은 사당이 붙어 있어서, 위에서 보면 둘이 T자 모양을 이룹니다. 북쪽을 지키는 신 쩐보를 모시는데, 붉고 사나운 얼굴에 손에는 뱀을 쥐고 발로는 거북을 밟고 있습니다. 다리 양 끝에는 나무로 깎은 상이 서 있습니다. 한쪽 끝은 원숭이, 다른 쪽 끝은 개입니다.
이 모두를 잇는 이 지방의 전설이 있습니다. 꾸라는 괴물이 머리는 인도에, 등은 호이안 밑에, 꼬리는 일본에 두고 홍수와 지진을 일으켰다고 합니다. 이 다리는 그 등에 꽂은 짧은 칼과 같았다고 합니다. 뒤에 중국계와 베트남 주민들이 괴물을 누르려고 사당을 더했다고 전합니다.
2022년 12월부터 2024년 8월까지 이 다리는 해체해서 복원하는 공사를 거쳤고, 일본 전문가들이 조언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