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주 한옥마을
Jeonju · 정류장 4곳 · ~50 min · 2.8 km
걸어서 정류장에 도착하면 그 자리의 해설이 저절로 재생됩니다. 무료이고 앱 설치도 가입도 필요 없습니다.
이 순서로 걷습니다
1. 경기전
전주는 전주 이씨의 본향입니다 — 1392년 조선을 세우고 이후 518년간 한국을 다스린 왕가의 뿌리죠. 1410년에 지은 경기전은 태조 이성계의 어진(御眞)을 모십니다. 푸른 곤룡포의 좌상 — 전란을 살아남은 극소수의 어진 중 하나입니다.
어진은 왕의 '두 번째 몸'으로 대우받았습니다. 이 그림은 전쟁과 화재 때마다 등에 업혀 산사로 피란했습니다. 그림을 잃는 것이 곧 왕조의 정통성 일부를 잃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경내엔 대나무 숲과 함께 전주사고가 있습니다. 조선왕조실록을 네 벌로 나눠 보관하던 요새화된 기록고 중 하나 — 1592년 임진왜란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것이 전주본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는 실록의 모든 페이지는 이 고장 선비들이 산속으로 짊어지고 간 그 책들의 후손입니다.
2. 전동성당
1791년, 전주 이씨 왕족 출신의 천주교 신자 윤지충이 신앙에 따라 조상의 신주를 불태웠습니다. 조선으로서는 사회 질서 자체에 대한 도전이었죠. 그는 이 도시 성문 밖에서 참수됐습니다 — 한국 최초의 천주교 순교자입니다.
한 세기 뒤 프랑스인 보두네 신부가 그 처형지를 사들여 성당을 지었습니다(1908~1914). 처형이 집행되던 성문을 헐어낸 돌을 가져다 썼다고 전해집니다. 박해의 도구가 기념의 재료가 된 것입니다.
3. 오목대
1380년, 장군 이성계는 황산에서 왜구를 크게 무찌르고 돌아가는 길에 이 언덕에서 승전 잔치를 열었습니다 — 왕위에 오르기 12년 전입니다. 이 자리에서 자신을 한나라를 세운 유방에 빗댄 노래를 불렀다는 이야기가 전해집니다. 야심이 이미 드러나고 있었던 거죠.
지금의 정자는 1900년 고종 황제가 다시 세운 것입니다. 무너져 가는 제국의 마지막 군주가, 조상의 흥기가 시작된 자리를 표시한 것입니다.
4. 전주향교
향교는 조선의 국립 지방학교였습니다 — 고을마다 하나씩, 경전과 예법과 글씨를 가르쳐 나라를 움직이는 과거 시험을 준비시켰죠. 1603년 이 자리로 옮겨 온 전주향교는 가장 잘 보존된 향교로 꼽히며, 대성전엔 지금도 공자와 우리 성현들의 위패가 모셔져 있습니다.
마당의 은행나무들은 수령 400년이 넘습니다. 공자가 은행나무 아래에서 가르쳤다는 행단(杏壇) 고사를 따라 향교마다 은행나무를 심었으니, 이곳의 노란 가을은 2,500년 전 교실의 인용문인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