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eritage Walk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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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지타노 — 계단 골목에서 바다까지

언덕 위 키에사 누오바에서 계단 골목을 따라 마욜리카 돔과 큰 해변, 포르닐로로 가는 절벽길까지. 장소 10곳, 약 70분, 거의 전부 내리막입니다.

포지타노 · 장소 10곳 · ~70분 · 2.0 km

인솔자가 함께 걷는 가이드 투어가 아니라, 혼자 걸으며 듣는 셀프 가이드 워킹 투어입니다. 예약도 정해진 출발 시각도 없습니다. 지도에서 장소 위치를 보고 번호 순서대로 걸으면, 각 장소에 도착할 때 그 자리의 오디오 가이드가 저절로 재생됩니다. 무료이고 앱 설치도 가입도 필요 없습니다.

걷는 시간이 약 70분이라 자유여행 반나절 동선으로 넣기 좋습니다. 같은 도시의 다른 코스와 이어 붙이면 당일치기 여행 코스가 되고, 이틀이면 1박 2일 여행 일정이 됩니다.

이 순서로 걷습니다

1. 키에자 누오바,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성당

길이 굽는 자리에 선 작은 돔 성당을 보세요. 키에자 누오바, 곧 '새 성당'이라 불리지만 이름보다 오래된 건물입니다. 정식 이름은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에, 은총의 성모 성당입니다. 해안도로에서 오는 버스가 이 옆에 서기 때문에, 많은 방문객이 이 굽이에서 처음 마을에 발을 딛습니다.

처음 지어진 때는 기록에 없습니다. 알려진 것은 11세기의 앞선 예배당 위에 다시 지어졌다는 사실입니다. 지금 보시는 모습은 그 뒤의 것으로, 타원형 평면 위에 돔을 얹었습니다. 안에는 식물 무늬를 그린 마요르카 타일 바닥이 깔려 있는데, 18세기 보수 때의 작업입니다.

포지타노는 '수직 마을'이라는 별명을 가졌고, 여기가 그 윗부분입니다. 발아래로 집들이 비탈을 따라 층층이 내려가고, 마을 꼭대기에서 해변까지 이어지는 수많은 계단길이 이곳의 특징입니다. 여기서 아래로 떨어지는 골목들은 바퀴가 아니라 발을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그 꼭대기에 서면 마을 전체가 한눈에 읽힙니다. 지붕 아래 지붕이 물가까지 이어지죠.

2. 비아 파시테아

지금 서 계신 곳은 비아 파시테아, 긴 머리핀 굽이를 그리며 포지타노를 가로지르는 길입니다. 자동차와 스쿠터, 마을버스가 걷는 사람들과 이 길을 함께 씁니다. 난간 너머를 보시면 지붕들이 계단처럼 물가로 내려갑니다. 이 이름은 길 전체에 붙어 있습니다. 위쪽 굽이에서 자동차가 멈추는 광장까지 말이죠.

절벽 위에 지은 마을에는 바퀴를 위한 길 하나와 발을 위한 길 여럿이 필요합니다. 비아 파시테아가 그 바퀴의 길입니다. 나머지는 거의 전부 계단이죠. 마을 꼭대기에서 해변까지 내려가는 계단길이 포지타노의 특징이고, 그 계단들은 이 길의 굽이를 몇 번이고 가로지릅니다. 계단이 길에서 갈라지는 곳은 대개 그쪽이 더 빠른 내리막입니다.

계단이 갈라지는 자리에 잠깐 멈춰 보세요. 집 담과 덩굴에 그늘이 지고, 자동차가 한 번도 닿은 적 없는 현관문들을 지납니다. 길가의 가게들은 옷과 샌들, 도자기를 팝니다. 오늘 아랫마을을 채우는 장사입니다. 호텔과 식당이 이 높이에 테라스를 둔 것은 여기서 만이 가장 넓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3. 피아차 데이 물리니

작은 광장을 둘러보세요. 한쪽에 소박한 성당, 키에자 델 로자리오가 서 있습니다. 광장의 이름 피아차 데이 물리니는 '물레방아의 광장'이라는 뜻입니다. 몇 걸음이면 건너는 크기지만, 마을의 경첩 같은 자리입니다.

이 성당은 1614년에 세워진 도미니코회 수도원으로 시작했습니다. 수도원은 1652년에 해산되었으니 마흔 해를 채우지 못한 셈입니다. 성당은 뒤에 법원으로 바뀌었습니다. 시간이 흘러 묵주기도 신심회의 자리가 되었고, 지금의 이름은 거기서 왔습니다. 지진 피해로 여러 해 문을 닫았다가 2006년에 다시 예배를 열었습니다.

안에는 출처가 분명치 않은 로마 시대 석관이 있는데, 춤추는 행렬이 새겨져 있습니다. 제단 벽감에는 19세기의 묵주기도의 성모상이 서 있습니다. 밖으로 나오면 이 광장은 마을이 기어를 바꾸는 자리입니다. 버스가 여기 멈추고 자동차는 되돌아가며, 광장에서 나가는 골목은 걷는 사람의 것입니다. 이 아래의 모든 곳은 계단으로 닿습니다.

4. 비아 데이 물리니

위를 보세요. 골목은 꽃덩굴을 얹은 격자 지붕 아래로 이어지고, 그 아래 가게들은 리넨 옷과 가죽 샌들, 그림을 그린 도자기로 꾸며져 있습니다. 비아 데이 물리니, '물레방아의 길'입니다. 포지타노에서 가장 붐비는 몇백 걸음이지요.

처음부터 상점가였던 것은 아닙니다. 포지타노는 20세기 전반까지 비교적 가난한 어촌이었습니다. 그보다 한 세기 전에는 살림이 어려워져 주민의 절반 이상이 떠났는데, 대부분 아메리카로 갔습니다. 관광객이 많이 찾기 시작한 것은 1950년대의 일입니다. 1953년 5월, 미국 작가 존 스타인벡이 잡지 하퍼스 바자에 이 마을 이야기를 실었습니다. 그는 이곳이 머무는 동안에는 현실 같지 않고 떠난 뒤에야 손짓하듯 현실이 되는 꿈의 장소라고 썼습니다.

그 변화가 가장 또렷하게 보이는 곳이 이 골목입니다. 어부들이 물가로 내려가던 길을 지금은 여행자들이 부티크 사이로 거닙니다. 진열창보다 골목 자체를 보세요. 여전히 계단이 놓인 좁은 길이고, 여전히 성당과 해변으로 내려가는 큰길입니다.

5. 산타 마리아 아순타 성당과 로마 빌라

돔을 올려다보세요. 초록과 파랑, 노랑의 마요르카 타일로 덮인 이 지붕은 마을 사진이라면 누구나 아는 바로 그 지붕입니다. 산타 마리아 아순타 성당, 포지타노의 본당입니다.

이야기는 베네딕토회 수도원에서 시작합니다. 994년부터 기록에 남아 있고 1159년에 축성되었습니다. 전해지는 바로는 성모 성화가 바다로 건너온 뒤 수도원이 세워졌다고 합니다. 전설에 따르면 동방에서 온 배 한 척이 이 앞바다에서 바람이 죽어 꼼짝 못 하게 되었습니다. 선원들은 '포사, 포사', 곧 '내려놓아라'라고 외치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배에 실린 성화를 두고 하는 말이라 여긴 그들은 성화를 이곳 사람들에게 넘겼습니다. 지금의 건물은 1777년부터 1783년 사이의 전면 재건으로 생겼습니다. 종탑은 그보다 오래된 1707년의 것이고, 아래층에는 일곱 마리 물고기와 여우를 거느린 바다 괴물의 중세 부조가 박혀 있습니다.

발밑에는 로마 빌라가 있습니다. 서기 79년 베수비오 화산이 터질 때 묻힌 집입니다. 1758년 폼페이와 헤르쿨라네움 발굴을 맡았던 기술자 카를 베버가 처음 기록했습니다. 2004년부터 2016년 사이의 발굴로 폼페이 제4양식 벽화가 그려진 식당이 드러났는데, 켄타우로스 케이론이 아킬레우스에게 리라를 가르치는 장면도 있습니다. 이 유적은 2018년 7월 MAR, 로마 고고학 박물관이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었고, 성당 옆 광장에서 들어갑니다.

6. 스피아자 그란데

돌아서서 마을을 올려다보세요. 해변에서는 포지타노의 비탈 전체가 한 장면에 담깁니다. 옅은 색 집들이 능선까지 층층이 쌓이고 그 한가운데 마요르카 타일 돔이 있습니다. 여기는 스피아자 그란데, '큰 해변'이며 마리나 그란데라고도 부릅니다.

마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해변이고, 절벽 아래에 자리합니다. 포지타노 역사의 대부분 동안 이곳은 일하는 바닷가였습니다. 중세에는 아말피 공화국의 항구였고, 16세기와 17세기에 번성했습니다. 18세기에는 많은 주민이 선주와 상인이 되어 유럽과 아메리카를 오가며 고급 직물을 거래했습니다. 그 교역은 나폴레옹 전쟁으로 무너졌고, 뒤이은 긴 쇠퇴는 관광이 시작되고서야 끝났습니다.

이제 바다를 보세요. 맑은 날에는 남서쪽으로 작은 섬 셋이 보입니다. 리 갈리입니다. 고대부터 오디세이아의 세이렌이 살던 곳으로 여겨졌고, 신화에서 세이렌은 노래 겨루기에 져서 바위로 변했습니다. 20세기에는 두 무용가가 차례로 이 섬을 가졌습니다. 레오니드 마신, 그 뒤에 루돌프 누레예프입니다. 지금도 배들이 이 모래밭에 올라오지만, 오늘 그 배들이 태우는 것은 대개 여행자들입니다.

7. 비아 포지타네지 다메리카

앞에 놓인 길을 보세요. 물 바로 위의 바위에 낸 길입니다. 비아 포지타네지 다메리카, '아메리카의 포지타노 사람들'이라는 뜻입니다. 절벽 발치를 따라 마을의 두 해변을 잇습니다.

이름은 이민자들을 말합니다. 19세기 중반 포지타노는 살림이 어려워져 주민의 절반 이상이 떠났고, 대부분 아메리카로 갔습니다. 20세기 전반까지도 마을은 비교적 가난한 어촌이었습니다. 1950년대에 들어서야 방문객이 많이 찾아오면서 마을의 운이 바뀌었습니다.

천천히 걸으세요. 바다 쪽으로는 물소리가 들릴 만큼 가깝고, 반대쪽으로는 절벽이 길 바로 위로 솟아 있습니다. 앞쪽 바위 돌출부에는 둥근 석탑이 서 있습니다. 계단으로 이루어진 마을에서 거의 평평한 몇 안 되는 구간이라, 포지타노에서 가장 편한 산책길입니다. 집들이 절벽에 어떻게 매달려 있는지 보기에도 가장 좋은 자리입니다. 이번만은 아래가 아니라 옆에서 보게 되니까요.

8. 토레 트라시타

길 옆 바위 위의 둥근 탑을 보세요. 토레 트라시타입니다. 마을의 두 해변, 동쪽의 스피아자 그란데와 서쪽의 포르닐로 사이에 서 있습니다. 산책로는 탑의 벽 바로 아래를 지납니다.

스페인 부왕이 남부 이탈리아를 다스리던 부왕령 시대의 원형 탑으로, 해안을 지키는 차단탑 역할을 했습니다. 이런 탑들은 사라센과 해적선의 잦은 습격을 막기 위해 세워졌습니다. 1532년 부왕 페드로 데 톨레도는 해안 마을들에 자기 비용으로 감시탑을 세우라고 명령했습니다. 1563년부터는 왕실이 사업을 넘겨받아 탑을 어디에 세울지 직접 정했습니다. 모든 탑에서 바다를 살필 수 있었고 대개 이웃한 두 탑이 시야에 들어왔기 때문에, 경보는 불과 연기로 해안을 따라 전해졌습니다.

포지타노 해안에는 이런 탑이 셋 있습니다. 트라시타는 그 가운데 것입니다. 서쪽, 포르닐로 건너편에는 오각형의 토레 디 포르닐로가 있습니다. 동쪽, 큰 해변 너머에는 셋 중 가장 오래된 토레 스폰다가 있는데 13세기의 것으로 봅니다. 벽의 두께와 몇 개뿐인 작은 창을 보세요. 이것들은 집이 아니라 눈이었습니다.

9. 포르닐로 해변

어두운 조약돌과 모래가 그리는 곡선을 따라 보세요. 포르닐로입니다. 포지타노에서 두 번째로 큰 해변으로, 마을 중심 서쪽의 작은 만에 숨어 있습니다.

걸어서 몇 분 거리지만 포르닐로는 스피아자 그란데와는 다른 곳처럼 느껴집니다. 만은 양쪽이 바위로 막혀 있어서 마을 중심은 둥근 탑이 선 돌출부 뒤에 숨습니다. 보이는 것은 절벽과 비탈에 흩어진 집 몇 채, 그리고 바다입니다. 성수기에는 해변 뒤쪽에 비치클럽과 식당 몇 곳이 자리를 잡고, 나머지 계절에는 거의 비어 있습니다.

이 해안에는 아주 오랫동안 사람이 살았습니다. 포지타노에서 사람의 첫 흔적은 후기 구석기 시대까지 올라가는데, 수렵과 채집을 하던 사람들이 그로타 라 포르타라는 동굴을 썼습니다. 로마인들은 기원전 100년 무렵부터 자리를 잡고 이 바닷가에 호화로운 빌라를 지었습니다. 1997년부터 포지타노는 아말피 해안 세계유산의 일부입니다. 포르닐로에 서서 눈앞에 물과 바위만 두고 있으면, 그 긴 시간이 쉽게 느껴집니다.

10. 토레 디 포르닐로, 토레 클라벨

만의 서쪽을 닫고 있는 돌출부 위의 탑을 보세요. 다섯 개의 면을 가졌는데, 이 해안의 감시탑으로는 드문 모양입니다. 토레 디 포르닐로, 흔히 토레 클라벨이라 부르는 탑입니다.

포지타노의 다른 탑들처럼 바다에서 오는 습격을 막는 해안 감시탑으로 시작했습니다. 1909년 스위스의 고고학자이자 작가인 질베르 클라벨이 이 탑을 사들였습니다. 1883년에 태어난 사람입니다. 당시 탑은 무너져 가고 있었고, 그는 오각형 평면을 그대로 살려 다시 짓게 했습니다. 클라벨은 이탈리아 아방가르드와 어울렸습니다. 1917년부터 미래주의 화가 포르투나토 데페로와 가까웠고, 데페로는 그의 책 '자살자를 위한 기관'에 그림을 그렸습니다. 클라벨은 1927년 바젤에서 세상을 떠났고, 탑은 그 뒤로 그의 이름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제 만 건너편을 돌아보세요. 맞은편 돌출부에 토레 트라시타가 보입니다. 이 탑들이 세워진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해안을 따라 서로가 서로를 지켜보는 것이죠. 두 탑 사이에 포르닐로 전체가 놓여 있습니다. 해변 하나, 길 하나, 집 몇 채. 포지타노에서 가장 조용한 구석이고, 그 끝의 탑은 마을이 끝나고 열린 해안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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