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로세움·포로 로마노
고대 로마의 볼거리와 국가 의식, 권력의 건축을 탐구하는 여정입니다.
로마 · 장소 9곳 · ~75분 · 3.2 km
인솔자가 함께 걷는 가이드 투어가 아니라, 혼자 걸으며 듣는 셀프 가이드 워킹 투어입니다. 예약도 정해진 출발 시각도 없습니다. 지도에서 장소 위치를 보고 번호 순서대로 걸으면, 각 장소에 도착할 때 그 자리의 오디오 가이드가 저절로 재생됩니다. 무료이고 앱 설치도 가입도 필요 없습니다.
걷는 시간이 약 75분이라 자유여행 반나절 동선으로 넣기 좋습니다. 같은 도시의 다른 코스와 이어 붙이면 당일치기 여행 코스가 되고, 이틀이면 1박 2일 여행 일정이 됩니다.
이 순서로 걷습니다
1. 콜로세움(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
지금 눈앞에 있는 거대한 타원형 건물이 콜로세움입니다. 서기 팔십년에 문을 열었고, 로마 사람들은 플라비우스 원형경기장이라고 불렀습니다. 이 건물을 지은 플라비우스 왕조는 한 가지 분명한 뜻을 담았습니다. 앞선 황제 네로가 자기 궁전을 짓느라 차지했던 땅을, 시민 모두가 쓰는 경기장으로 되돌린 것입니다. 이 도시는 다시 여러분의 것이라는 메시지였습니다.
먼저 바깥 벽을 올려다보세요. 아치가 층층이 뚫려 있습니다. 저 아치 하나하나가 출입구였습니다. 통로를 촘촘히 나누어 둔 덕분에 오만 명 남짓한 관중이 들어오고 나가는 데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지금 서 계신 이 자리도, 경기가 끝나면 쏟아져 나온 사람들로 가득 찼을 겁니다.
벽의 층마다 기둥 모양이 다른 것도 보세요. 아래층은 단순하고, 가운데는 소용돌이 장식이 있고, 맨 위는 잎사귀 장식으로 가장 화려합니다. 아래에서 위로 갈수록 장식이 더해지는 이 순서는 로마 건축이 즐겨 쓰던 방식이었습니다.
벽을 조금 더 가까이 보시면 돌에 작게 파인 자국들이 있습니다. 돌을 붙들던 쇠못 자리입니다. 중세에 사람들이 그 쇠를 빼 가면서 남은 흔적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로마인이 보던 콜로세움이 아니라, 겉을 벗긴 뼈대입니다.
바닥 쪽도 보세요. 지금 훤히 드러난 지하의 미로는 원래 나무 바닥 아래 감춰져 있었습니다. 승강기와 뚜껑문이 있어서 맹수와 검투사가 그 아래에서 갑자기 솟아올랐습니다. 관객은 그것이 어디서 나오는지 볼 수 없었습니다.
검투사 경기와 맹수 사냥은 황제가 시민에게 주는 선물로 여겨졌습니다. 황제가 베풀고, 시민은 함께 보고 환호했습니다. 이 건물이 대단한 것은 크기 때문이 아니라, 수만 명의 움직임과 시선을 설계로 다스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뒤를 돌아보세요. 가까이에 서 있는 개선문이 다음 장소입니다.
2.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지금 앞에 있는 커다란 개선문이 콘스탄티누스 개선문입니다. 서기 삼백십오년에 세워졌고, 콘스탄티누스가 밀비우스 다리 전투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합니다. 이 승리로 그는 로마의 새 황제가 되었고, 로마의 종교와 정치도 새로운 방향으로 움직이기 시작했습니다.
이 개선문에는 비밀이 하나 있습니다. 조각 대부분이 남의 것입니다.
가까이 가서 조각들을 비교해 보세요. 둥근 원판 안의 장면과, 그 아래 띠처럼 길게 새겨진 조각의 솜씨가 확연히 다릅니다. 둥근 쪽이 훨씬 정교합니다. 백 년도 더 전에 만들어진 것을 뜯어다 붙였기 때문입니다. 트라야누스, 하드리아누스,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처럼 존경받던 옛 황제들의 기념물에서 가져온 조각들입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내전에서 이기고 로마에 들어왔습니다. 사세기의 로마는 지쳐 있었고 갈라져 있었습니다. 그에게 급했던 것은 시간이 아니라 정통성이었습니다. 그래서 옛 황제들의 좋은 시절을 자기 개선문에 붙이고, 얼굴만 자기 얼굴로 바꾸었습니다. 지나가는 시민이 보기에 그는 갑자기 나타난 승자가 아니라, 위대한 황제들의 뒤를 잇는 사람처럼 보였을 겁니다.
돌로 만든 족보인 셈입니다. 옛 황제들의 조각을 가져와 자신의 개선문에 배치한 것 자체가, 콘스탄티누스가 어떤 과거를 이어받고 싶었는지를 보여 줍니다. 다시 한번 둥근 원판과 그 아래 띠 조각을 번갈아 보세요. 두 시대의 솜씨가 한 문 위에 나란히 있습니다.
이제 몇 걸음만 더 가면 발밑이 오래된 돌길로 바뀝니다. 다음은 비아 사크라입니다.
3. 비아 사크라(성스러운 길)
지금 걷고 있는 이 돌길이 비아 사크라, 성스러운 길입니다. 발밑을 한번 내려다보세요. 가운데가 움푹 패어 있습니다. 수레바퀴와 발길이 오래 갈아낸 자국입니다.
이 길은 포럼을 가로질러 카피톨리노 언덕까지 이어졌습니다. 로마에서 가장 중요한 행렬이 지나는 길이었습니다. 종교 의식, 나라의 행사, 그리고 전쟁에서 이긴 장군의 개선 행렬이 모두 이 길을 썼습니다. 장군은 포로와 전리품을 앞세우고, 양옆에 늘어선 시민들의 환호를 받으며 이 길로 들어왔습니다. 행렬은 언제나 같은 길을, 같은 방향으로 지나갔습니다.
로마에서는 중요한 행사가 이렇게 같은 길을 반복해서 지나갔습니다. 시민들은 이 길을 걸으며 도시의 중요한 장소들을 차례로 마주했습니다. 이 길은 방금 보고 온 콜로세움과 앞에 펼쳐질 포럼을 하나로 잇습니다.
천천히 걸으면서 앞을 보세요. 개선문과 신전과 단이 시선이 닿는 자리마다 놓여 있습니다. 걸음을 멈추고 바라보게 되는 지점들입니다.
지금 여러분도 그 길 위를 걷고 있습니다. 길이 넓게 트이는 곳에서 멈추세요. 다음은 로마 포럼 전체를 바라보는 자리입니다.
4. 로마 포럼 – 중앙 조망
이제 앞에 넓게 펼쳐진 골짜기를 보세요. 부서진 기둥들이 흩어져 있어 폐허처럼 보이지만, 여기가 로마의 도심이었습니다. 수백 년 동안 이 골짜기에서 로마의 하루가 돌아갔습니다. 신전에서 맹세하고, 바실리카에서 재판하고, 시장에서 계약하고, 단 위에서 연설했습니다.
한꺼번에 이름을 외우려 하지 마시고, 세 겹으로 나눠서 보세요.
가장 가까이, 발밑에 흩어진 주춧돌과 기둥 조각입니다. 같은 자리에 몇 번씩 다시 지은 흔적입니다. 불이 나고, 무너지고, 또 세웠습니다.
그다음 가운데쯤에는 넓은 계단과 벽이 남은 큰 건물들이 보입니다. 재판을 하고 논쟁을 벌이던 곳입니다.
그리고 맨 뒤로 언덕이 솟아 있습니다. 저 위가 황제들의 궁전이 있던 곳입니다. 권력이 시민들의 생활 위에 올라앉은 모양이, 폐허가 된 지금도 그대로 읽힙니다.
이천 년 전 아침이면 이 골짜기는 시끄러웠습니다. 소송하러 온 사람, 돈을 빌리러 온 사람, 연설을 들으러 온 사람으로 가득했습니다. 콜로세움이 구경거리로 사람들의 감정을 다스린 곳이라면, 포럼은 매일의 일과로 질서를 다스린 곳이었습니다. 로마의 정치는 방 안에 있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탁 트인 돌바닥 위에서, 모두가 보는 앞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제 이 광장의 북쪽 가장자리를 보세요. 주변과 달리 지붕까지 온전히 남은 벽돌 건물이 보일 겁니다. 다음은 그 건물, 원로원 의사당입니다.
5. 쿠리아 율리아(원로원 의사당)
앞에 보이는 네모난 벽돌 건물이 쿠리아 율리아, 원로원 의사당입니다. 주변이 온통 부러진 기둥뿐인데 이 건물만 멀쩡하게 서 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중세에 교회로 바뀌어서 헐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건물은 율리우스 카이사르가 짓기 시작했고, 그가 죽은 뒤 아우구스투스가 완성했습니다. 황제가 바뀌고 또 바뀌는 동안에도 원로원은 로마의 정치를 상징하는 기관으로 남았습니다. 로마의 중요한 결정이 이 안에서 났습니다.
안을 들여다보면 놀라울 만큼 단순합니다. 긴 벽, 양쪽으로 놓인 자리, 장식은 거의 없습니다. 화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누가 먼저 말하고 누가 나중에 말하느냐, 그리고 어떤 순서로 결정하느냐였습니다. 건물의 모양 자체가 사람들에게 언제 말하고 언제 들을지를 가르치는 셈입니다.
바깥 광장이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곳이었다면, 이 안은 순서를 정하는 곳이었습니다. 제국이 오래 간 것은 사람들을 감동시켜서만이 아니라, 결정하는 방법을 미리 정해 두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포럼의 서쪽, 언덕 아래쪽을 보세요. 높이 솟은 기둥 몇 개가 보일 겁니다. 다음은 사투르누스 신전입니다.
6. 사투르누스 신전
지금 앞에 서 있는 높은 기둥 여덟 개가 사투르누스 신전입니다. 남아 있는 것은 이 기둥들뿐이지만, 포럼에서 가장 오래된 신전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그리고 이 아래가 로마의 금고였습니다. 로마의 국고인 아이라리움이 이 신전 안에 있었습니다.
로마는 나라의 돈을 창고가 아니라 신전에 두었습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신의 집에서 돈을 훔치면 그것은 도둑질이 아니라 신성모독이 됩니다. 벌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나라의 돈은 장부의 숫자가 아니라, 신이 지켜 주는 공공의 신뢰였습니다. 로마는 제도를 세울 때 법만으로 세우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함께 얹었습니다.
기둥을 자세히 보세요. 굵기와 빛깔이 조금씩 다른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 시대의 재건 흔적이 지금의 모습에 함께 남아 있습니다. 조금 비스듬히 서서 기둥들을 하늘에 겹쳐 보세요. 일부만 남았는데도 그 윤곽이 여전히 무게감을 줍니다. 로마의 기념물은 조각이 되어도 말하는 힘을 잃지 않습니다.
이제 성스러운 길을 따라 남동쪽으로 다시 걸어 보겠습니다. 길 끝에 높이 서 있는 돌 아치가 다음 장소, 티투스 개선문입니다.
7. 티투스 개선문
앞에 서 있는 이 아치가 티투스 개선문입니다. 티투스 황제가 유대 전쟁에서 거둔 승리를 기념하는 문입니다. 서기 팔십일년 무렵, 티투스가 죽은 뒤 동생 도미티아누스 황제가 형을 기리며 세웠습니다.
아치 아래로 들어가서 고개를 들어 양쪽 벽을 보세요. 한쪽에 사람들이 무언가를 어깨에 메고 가는 장면이 있습니다. 가운데 큰 촛대가 보이시나요. 예루살렘 신전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서기 칠십년에 로마군은 예루살렘을 함락하고 신전의 보물을 로마로 가져왔습니다. 이 조각은 그 개선 행렬을 새긴 것입니다. 장식이 아니라 증거입니다. 우리가 이겼고, 가져왔고, 여기 그 증거가 있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로마에게는 승리의 기록이었지만, 유대인들에게는 오랫동안 이 아치 아래를 지나지 않는 이유가 되었다고 전해집니다. 같은 돌이 누구에게는 자랑이고 누구에게는 상처입니다.
그리고 이 아치는 길 한복판에 서 있습니다. 매일 오가는 사람들이 의식하지 않아도 그 이야기를 보게 되는 자리입니다. 연설은 잊히지만, 길 위에 세운 돌은 매일 다시 읽힙니다. 아치를 천천히 통과해 보세요.
이제 왼쪽 위로 솟은 언덕으로 올라가겠습니다. 다음은 황제들의 언덕, 팔라티노입니다.
8. 팔라티노 언덕 – 황궁 권역
이 언덕이 팔라티노입니다. 궁전을 뜻하는 영어 팰리스가 바로 이 언덕 이름에서 나왔습니다. 전해지는 이야기로는 로마가 처음 세워진 자리도 이 언덕입니다. 그 신화의 땅 위에 황제들이 궁전을 올렸습니다.
여기 서서 아래를 한번 내려다보세요. 방금 걸어온 포럼이 보일 겁니다. 이 위치가 핵심입니다.
초대 황제 아우구스투스가 살았던 집은, 뒤이은 황제들의 거대한 궁전에 비하면 비교적 수수했습니다. 이후 황제들은 이 언덕의 궁전들을 계속 넓혀서 언덕 전체를 덮었습니다. 테라스와 단을 쌓아 올려 높이 자체가 권력의 모양이 되었습니다.
그때부터 황제는 시민들이 모인 골짜기를 내려다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시민은 궁전을 올려다보고, 황제는 광장을 내려다봅니다. 권력이 어디 있는지 굳이 설명할 필요가 없어진 것입니다. 올려다보면 보였으니까요. 공간이 무엇이 당연한지를 가르친 셈입니다.
이제 골짜기 반대편을 보세요. 길게 휘어진 넓은 땅이 보일 겁니다. 다음이자 마지막 장소, 키르쿠스 막시무스입니다.
9. 키르쿠스 막시무스 조망 지점
눈앞에 길쭉한 잔디밭이 보이실 겁니다. 건물은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땅의 모양을 보세요. 가운데가 평평하게 길고, 양옆이 완만하게 올라가 있습니다. 저기가 관중석이 있던 자리입니다. 팔라티노와 아벤티노, 두 언덕 사이의 골짜기를 그대로 경기장으로 쓴 것입니다.
여기는 로마에서 가장 큰 경기장이었습니다. 십오만 명쯤 들어갔다고 보는데, 콜로세움의 세 배쯤 되는 셈입니다. 전차가 일곱 바퀴를 돌았습니다. 기수들은 팀 색깔을 달고 달렸고, 사람들은 자기 색을 응원했습니다. 파랑, 초록, 빨강, 흰색. 경주가 있는 날이면 도시 전체가 같은 이야기를 했습니다. 콜로세움이 삶과 죽음의 극장이었다면, 여기는 되풀이되는 축제의 자리였습니다. 이렇게 큰 도시에는 함께 흥분하고 함께 기뻐하는 날이 필요했습니다.
오늘 걸어온 길을 한번 떠올려 보세요. 콜로세움의 구경거리에서 시작해, 개선문의 기억을 지나, 성스러운 길을 걷고, 시민들이 다투던 포럼을 건너, 원로원과 신전을 보고, 황제의 언덕에 올라 여기까지 왔습니다. 로마는 이 모든 것이 하나로 돌아가는 도시였습니다. 건물이 사회를 담기만 한 것이 아니라, 사회를 움직였습니다.
건물은 대부분 사라졌습니다. 그런데 땅의 모양은 남아서, 여기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아직도 알려 줍니다. 로마가 남긴 것은 돌이 아니라 형태였습니다. 건물이 사라진 뒤에도 공간의 형태는 당시 사람들이 어떻게 모이고 움직였는지를 보여 줍니다.
이것으로 콜로세움에서 시작한 걷기 투어를 마치겠습니다. 잠시 이 골짜기를 둘러본 뒤, 다음 일정으로 이동해 보세요.